첫휴가를 나오다! - 나의 일상
2008.12.28 05:39 Edit
2008년 12월 27일 ~ 12월 31일.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다. 신병위로외박(휴가).
버스를 8시간을 타서야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에서 경남 의령군 의령읍으로 올 수 있었다. 부대에서 홍천을 지나 대구를 거쳐 의령까지... 꽤나 오랜 길이었다. 하지만 첫 휴가라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모님께 멋있게 인사드릴 것 등을 생각하며 수시간을 수분같이 느꼈던 것 같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만큼은 말짱하다.
나와서 해야할 것을 내 노트에 한 달 정도 전부터 적어왔었다. 부대에 들고 가야할 것도 제법된다.
이제 시작된 첫 휴가. 낭비하는 시간들 없이... 후회하지 않도록 이 시간들을 사용해야겠다.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왔다. 신병위로외박(휴가).
버스를 8시간을 타서야 강원도 인제군 상남면에서 경남 의령군 의령읍으로 올 수 있었다. 부대에서 홍천을 지나 대구를 거쳐 의령까지... 꽤나 오랜 길이었다. 하지만 첫 휴가라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부모님께 멋있게 인사드릴 것 등을 생각하며 수시간을 수분같이 느꼈던 것 같다. 몸은 피곤해도 정신만큼은 말짱하다.
나와서 해야할 것을 내 노트에 한 달 정도 전부터 적어왔었다. 부대에 들고 가야할 것도 제법된다.
이제 시작된 첫 휴가. 낭비하는 시간들 없이... 후회하지 않도록 이 시간들을 사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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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앞으로 다가온 입대. - 나의 일상
2008.08.10 02:06 Edit
시계가 8월 10일 오전 1시 38분임을 알리고 있다.
[입영일시: 2008년 08월 11일 13:30] 이라고 적힌 입영통지서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나는 또래의 애들보다 좀 늦게 가는 편이다. 보통 친구들은 1학년 마치고 많이 갔으니, 꺽인 상병 아니면 병장인 것이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 녀석들 많이 고생했겠구나 생각이 든다.
원래 1학년 마치고 바로 갈 생각이었는데 방위산업체로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뒤로 미뤘다. 그리고 2학년 마칠 때까지 그렇게만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2학년 마친 겨울방학 어느 날, 3일 정도의 짧은 생각 끝에 갑작스레 8월 11일 육군훈련소(논산)로 현역 입대를 신청하게 됐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3학년 1학기가 되었어야 할 그 학기를 쉬면서 선교 훈련을 너무 받고 싶었고 예전에 함께하던 공동체 사람들 역시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현역은 방위산업체의 TO가 참 없다는 소식도 들었다. 흠, 아, 그리고, 가장 빨리 갔다가 올 수 있는 것이 평범한 현역인 것도 한 몫을 했다. 여튼 이런 여러 복합적이지만 치명적이게 중요하지도 않은, 그런 이유들로 이런 충동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를 해본적이 거의 없다. 이 선택 역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기분을 말하자면, 어렸을 때 그렇게 많이 했던, 이사를 하는 기분이다. 그래, 그렇다. 2년반이 다될동안 익숙해지다 못해 좀 따분해진 한동을 이제 잠시 벗어나, 다시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조금 설레인다. 기대된다. 뭐, 물론 힘들꺼라는 말에 조금 걱정도 된다.(역시, 코고는 것 막는 수술을 했어야 했나...ㅋㅋ)
하지만 여호수아 1:9 말씀 붙잡고 있는 나에게 그런 것은 조금도 걸림돌이 없다. 하하!
자, 좋다. 뭐든 와라.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든 그랬던 것처럼, 나도 보란듯이 전역해보이겠다. 그리고 좀 더 다듬어진 사람이 되겠다. 좀 더 하나님 말씀에 민감한 사람이 되겠다. 좀 더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좀 더...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되겠다!
하늘소망을 품고있는 어린아이,
하나님께서 '주인'되심과
내가 하나님의 '종'됨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그곳으로 아주 자그마한 보폭이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자,
최성원.
군대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입영일시: 2008년 08월 11일 13:30] 이라고 적힌 입영통지서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나는 또래의 애들보다 좀 늦게 가는 편이다. 보통 친구들은 1학년 마치고 많이 갔으니, 꺽인 상병 아니면 병장인 것이다. 그런 녀석들을 보면서 녀석들 많이 고생했겠구나 생각이 든다.
원래 1학년 마치고 바로 갈 생각이었는데 방위산업체로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뒤로 미뤘다. 그리고 2학년 마칠 때까지 그렇게만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2학년 마친 겨울방학 어느 날, 3일 정도의 짧은 생각 끝에 갑작스레 8월 11일 육군훈련소(논산)로 현역 입대를 신청하게 됐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3학년 1학기가 되었어야 할 그 학기를 쉬면서 선교 훈련을 너무 받고 싶었고 예전에 함께하던 공동체 사람들 역시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또한 현역은 방위산업체의 TO가 참 없다는 소식도 들었다. 흠, 아, 그리고, 가장 빨리 갔다가 올 수 있는 것이 평범한 현역인 것도 한 몫을 했다. 여튼 이런 여러 복합적이지만 치명적이게 중요하지도 않은, 그런 이유들로 이런 충동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난 내가 선택한 길에 대해 후회를 해본적이 거의 없다. 이 선택 역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 기분을 말하자면, 어렸을 때 그렇게 많이 했던, 이사를 하는 기분이다. 그래, 그렇다. 2년반이 다될동안 익숙해지다 못해 좀 따분해진 한동을 이제 잠시 벗어나, 다시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것이다. 조금 설레인다. 기대된다. 뭐, 물론 힘들꺼라는 말에 조금 걱정도 된다.(역시, 코고는 것 막는 수술을 했어야 했나...ㅋㅋ)
하지만 여호수아 1:9 말씀 붙잡고 있는 나에게 그런 것은 조금도 걸림돌이 없다. 하하!
자, 좋다. 뭐든 와라.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든 그랬던 것처럼, 나도 보란듯이 전역해보이겠다. 그리고 좀 더 다듬어진 사람이 되겠다. 좀 더 하나님 말씀에 민감한 사람이 되겠다. 좀 더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좀 더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 좀 더...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되겠다!
하늘소망을 품고있는 어린아이,
하나님께서 '주인'되심과
내가 하나님의 '종'됨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그곳으로 아주 자그마한 보폭이지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자,
최성원.
군대 다녀오겠습니다^-^ 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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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여름 리서치를 다녀왔다. - Middle-east Field Research
2008.08.05 02:32 Edit
시리아.
2008년 7월, MFR 14기 여름 리서치를 다녀왔다.
지난 한 학기를 훈련과 과외로 지내면서 이번 리서치만을 기대하고 기다려왔다. 이번 리서치는 바로, '돈'이라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 앞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혀서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Test 였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두번째 아웃리치, MFR 14th 훈련팀 - 시리아에 있는 이슬람 소수종파, 알라위 종파 리서치. 시작부터 그리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다.
나는 이 훈련을 받으면서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리더십을 향한 순종'이다. 지난 06년 여름 비전팀 7th 아웃리치를 다녀오고나서 내 안에 '참 순종'이 없음을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나때문에 고생했을 섬김이 형님들이 생각났기에 처음 이 훈련을 시작할 때에 반드시 이것만큼은 지키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던 나에게, 문제는 공동체 지체 중 한 자매가 갈 수 있는가 없는가로 시작되었다. 그 자매는 사실 거의 초신자인 자매로 이 공동체에 처음 들어올 때 인터뷰에서 주님을 영접했다고 들었다. 해서인지, 아님, 그냥 단순히 어려서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학기 중의 훈련에서 참 성숙치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많은 훈련 프로그램 가운데 늦게 오든지 안오든지... 실제로 이번학기, 실로 어려움 중에 훈련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몇몇 다른 지체들은 그 자매로 인해 때로는 힘이 빠질 정도였으니까. 이런 자매가 마침내 아웃리치에 동참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건강의 이유였다. 그 자매는 만성에 가까운 신장염을 앓고 있는데 그것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셔서 절대로 보내시지 않는다고 하시니... 결코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 디렉터에게 주셨다는 마음은 참 황당하게도, 이 지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는 응답이었다. 공동체는 혼란에 빠졌다. 디렉터는 티켓팅 데드라인이 다가올 때, 총무부장에게 말했다. 일단은 티켓팅을 이 지체의 것까지 하자고.
이때부터 총무부장의 마음이 참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확신컨데, 분명히 힘들었다. 이 지체가 시리아 가는 것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다들 판단하고 있을텐데... 여기에 더해, 디렉터와 CR, 간사님에게까지 그러한 마음이 부어졌다고 한다.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세 리더들의 마음이 똑같은 이 상황에서, 안그래도 없는 재정 엄한데(적어도 현재 보기에는...) 버리라고하는 것이다. 총무부장에게는 참 힘든 선택의 기로였을 것이다. 그는 모든 재정을 관리하고 있었고 그 재정의 많은 부분은 선교후원금이었으며... 또한, 그는 책임감을 알았으니까.
만약 내게 그런 선택의 순간에 있었다면, 난 주저없이 그리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훈련을 순종의 훈련으로 인식한 나의 태도도 한몫을 했겠지만 사실은 그런 이유보다는...
솔직히, 나는 책임감있게 무언가 맡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리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총무부장은 그 지체의 티켓팅을 취소했다.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너무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왜 순종을 안했지?
내 마음속에는 그를 끊임없이 정죄하고 정죄했다. 내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한체... 남의 티끌을 보고 힘들어한 꼴이다. 물론 그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잘한 것도 없다. 마음 속으로도 나는 정죄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런 순종의 여러 훈련들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있었다. 하지만 번번히 내게는 불만족스런 결과를 공동체에서 느껴야했다. 나는 어떠한 심정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려는 순간, 정죄하는 나 자신을 보면 조금도 선하지 않은ㅡ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드는 나의 이상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질려버린 나는 리서치가 끝날즈음에는 일상적인 대화들 외에는, 벙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따라서 지혜없는 내 생각으로만 구상된 논리들을 피력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못했다. 나는 부르짖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침묵하시는 겁니까. 또, 도대체 저를 왜 이렇게 침묵하게 하시는 겁니까. 저는 이제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욕할 수 없고,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제 모습도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 순종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 교만함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침내 이 리서치 일정이 끝날 즈음에 하나님께서 딱 한마디 말씀을 하셨다.
(출애굽기 14:14, NIV) ...중략... you need only to be still.
아...
나의 모든 응어리지고 어려웠던 마음들이 조금씩 녹았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가장 필요한 것을 아셨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조용히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껏 조용하게 있는 법을 훈련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훈련을 시키신 것이었다. 비록 내 마음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을지라도 그것을 대가로 조용히 인내하는 법을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신 것이다.
리서치가 끝나고 수일이 지난 지금, 이번 리서치에 임하면서 겪고 느끼고 떠올렸던 생각들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이것을 적어둬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해서 이렇게 오늘도 두서없이 적어본다. 벌써 희미해지는 것들이 있다. 빨리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정리해야겠다.
2008년 7월, MFR 14기 여름 리서치를 다녀왔다.
지난 한 학기를 훈련과 과외로 지내면서 이번 리서치만을 기대하고 기다려왔다. 이번 리서치는 바로, '돈'이라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 앞에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부딪혀서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에게 주어지는 또 하나의 Test 였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두번째 아웃리치, MFR 14th 훈련팀 - 시리아에 있는 이슬람 소수종파, 알라위 종파 리서치. 시작부터 그리 순탄한 여정이 아니었다.
나는 이 훈련을 받으면서 한 가지만큼은 확실히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리더십을 향한 순종'이다. 지난 06년 여름 비전팀 7th 아웃리치를 다녀오고나서 내 안에 '참 순종'이 없음을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나때문에 고생했을 섬김이 형님들이 생각났기에 처음 이 훈련을 시작할 때에 반드시 이것만큼은 지키리라 다짐했던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던 나에게, 문제는 공동체 지체 중 한 자매가 갈 수 있는가 없는가로 시작되었다. 그 자매는 사실 거의 초신자인 자매로 이 공동체에 처음 들어올 때 인터뷰에서 주님을 영접했다고 들었다. 해서인지, 아님, 그냥 단순히 어려서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학기 중의 훈련에서 참 성숙치 못한 모습들을 많이 보았다. 많은 훈련 프로그램 가운데 늦게 오든지 안오든지... 실제로 이번학기, 실로 어려움 중에 훈련받는다고 생각하고 있던 몇몇 다른 지체들은 그 자매로 인해 때로는 힘이 빠질 정도였으니까. 이런 자매가 마침내 아웃리치에 동참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건강의 이유였다. 그 자매는 만성에 가까운 신장염을 앓고 있는데 그것이 다시 재발한 것이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셔서 절대로 보내시지 않는다고 하시니... 결코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 디렉터에게 주셨다는 마음은 참 황당하게도, 이 지체가 너희와 함께 할 것이라는 응답이었다. 공동체는 혼란에 빠졌다. 디렉터는 티켓팅 데드라인이 다가올 때, 총무부장에게 말했다. 일단은 티켓팅을 이 지체의 것까지 하자고.
이때부터 총무부장의 마음이 참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확신컨데, 분명히 힘들었다. 이 지체가 시리아 가는 것은, 완전히,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고 다들 판단하고 있을텐데... 여기에 더해, 디렉터와 CR, 간사님에게까지 그러한 마음이 부어졌다고 한다.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세 리더들의 마음이 똑같은 이 상황에서, 안그래도 없는 재정 엄한데(적어도 현재 보기에는...) 버리라고하는 것이다. 총무부장에게는 참 힘든 선택의 기로였을 것이다. 그는 모든 재정을 관리하고 있었고 그 재정의 많은 부분은 선교후원금이었으며... 또한, 그는 책임감을 알았으니까.
만약 내게 그런 선택의 순간에 있었다면, 난 주저없이 그리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훈련을 순종의 훈련으로 인식한 나의 태도도 한몫을 했겠지만 사실은 그런 이유보다는...
솔직히, 나는 책임감있게 무언가 맡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그리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날 총무부장은 그 지체의 티켓팅을 취소했다.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나는 너무너무 마음이 힘들었다.
왜 순종을 안했지?
내 마음속에는 그를 끊임없이 정죄하고 정죄했다. 내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한체... 남의 티끌을 보고 힘들어한 꼴이다. 물론 그가 잘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잘한 것도 없다. 마음 속으로도 나는 정죄하지 않았어야 했다.
이런 순종의 여러 훈련들이 이후에도 계속해서 있었다. 하지만 번번히 내게는 불만족스런 결과를 공동체에서 느껴야했다. 나는 어떠한 심정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려는 순간, 정죄하는 나 자신을 보면 조금도 선하지 않은ㅡ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을 정죄하려드는 나의 이상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질려버린 나는 리서치가 끝날즈음에는 일상적인 대화들 외에는, 벙어리였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따라서 지혜없는 내 생각으로만 구상된 논리들을 피력하기가 힘들었다. 아니, 못했다. 나는 부르짖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침묵하시는 겁니까. 또, 도대체 저를 왜 이렇게 침묵하게 하시는 겁니까. 저는 이제 누구도 탓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욕할 수 없고, 누구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제 모습도 똑같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 순종하지 못했던 모습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아는 교만함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침내 이 리서치 일정이 끝날 즈음에 하나님께서 딱 한마디 말씀을 하셨다.
(출애굽기 14:14, NIV) ...중략... you need only to be still.
아...
나의 모든 응어리지고 어려웠던 마음들이 조금씩 녹았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가장 필요한 것을 아셨다. 내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조용히 있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껏 조용하게 있는 법을 훈련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훈련을 시키신 것이었다. 비록 내 마음이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을지라도 그것을 대가로 조용히 인내하는 법을 훈련시키시고 가르치신 것이다.
리서치가 끝나고 수일이 지난 지금, 이번 리서치에 임하면서 겪고 느끼고 떠올렸던 생각들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가장 먼저 이것을 적어둬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해서 이렇게 오늘도 두서없이 적어본다. 벌써 희미해지는 것들이 있다. 빨리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정리해야겠다.

